마태복음 21장 예루살렘: 평화의 성에 알맞는 평화의 왕 예수

주요 구절: 마 21:42

Matthew, Chapter 21

마침내 예수님과 일행은 예루살렘 가까이 도착합니다. 감람 산 벳바게에서 입성을 준비합니다(1절).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마을에 가서 나귀(요 12:14)와 나귀 (1____)를 풀어오라고 합니다(2절). 마가(막 11:1)와 누가(눅 19:30)는 나귀 어미가 함께 온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나귀 새끼는 한 번도 사람이 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미 나귀가 동행 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왕적 권위(사사기에 보면 왕과 아들들이 나귀를 탔습니다)로 나귀를 타지만 그 중에서도 새끼를 탄 것은 겸손한 사역을 상징합니다. 말은 전쟁에 사용되는 짐승이지만, 나귀는 물건을 나르기 위한 동물입니다. 예수님은 육적 전쟁이 아니라, 영적 평화를 위해 오셨음을 암시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나귀 새끼를 탄 겸손한 왕은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고,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슥 9:10).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겉옷을 펴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며 환영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2____)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3_____) 하더라.”(9절) “호산나”는 ‘오, 주님,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호쉬안나’(시 118:25)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10절). “이는 (4____)냐?”(10절)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과 화평하기보다 싸움을 계획합니다. 그 분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밉니다(23-32, 33-46절). 예루살렘(‘예루’=성+‘살렘’=평화)은 더 이상 ‘평화의 성’이 아니라, “강도의 (5____)”(13절)입니다.

예수님은 벳바게로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는 찾지 못하여 저주하자 말라버립니다. 첫 열매가 없어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처럼 열매 맺지 못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저주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기도하는 자는 앞으로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21-22절).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권위’문제로 도전해 오자(23-27절; 막 11:27-33; 눅 20:1-8), 예수님은 ‘두 아들 비유’(28-32절)로 그들의 불신앙(첫째 아들)을 밝힙니다. 그리고 ‘포도원 농부 비유’(33-46절; 막 12:1-12; 눅 20:9-19)로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인 종들을 정죄합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6_____)이 되었나니”(42절; 시 118:22) 하지만, 늦었지만 순종한 첫째 아들에 비유되는 세리와 창녀들이 믿고(32절),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7____)이 될 것입니다(43절).

 

생각하기

 

‘예루살렘’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해답

 

답: 1. 새끼, 2. 찬송, 3. 호산나, 4. 누구, 5. 소굴, 6. 머릿돌, 7.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