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이란 이름은 아주 오래되었다. 처음은 Synod of Milan에서 390년 Siricius 왕에게 편지를 보낸 것에서 “Apostle Creed”라는 말이 나온다. Rufinus가 404년에 Commentary on the Creed라는 책을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도들은 오순절 날에 주로 원어로 말하는 가능성을 받았다. 주님은 ‘나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나가기 전에 제자들은 서로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가운데 가르침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규범이 있을 때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함께 모여 성령 충만으로 이 작은 표현을 만들었고 한 사람씩 좋아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회중적인 가르침으로 나눌 수 있도록 명령했다”(켈리, Early Christian Creeds)
그래서 사도들이 사도신경을 만들었고 권위는 ‘사도적인’ 권위이다. 그러므로 ‘성경’과 동일한 것이다. 목표는 가르침의 통일이었다.
Augustinus의 De Symbolo(5세기)라는 책에서 “예수 승천 이후 제자들은 무서워 함께 모였고 보혜사가 왔다. 그들은 그 때 신경을 작성했다. 베드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다. 안드레가, 야고보, 요한 한 사람 씩 구체적인 말을 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요한복은 20장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사건을 믹스해서 혼돈 시켰기에 잘못이다. 당시 사도적 기원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였다. 4세기~중세 끝까지 그랬다. 이에 대한 공격은 1438년 Ferrara라는 도시에서 동방, 서방 대표자들이 만났다. 그때 서방대표들은 사도신경을 인용했고 제시했지만, 동방은 부정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도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고 보지도 못했다. 이것이 정말 사도적이라면 사도행전에 나왔어야 했다”고 했으며 사도적 기원을 믿지 않았다. Lerenso Vella와 R. Pecock 두 사람도 사도신경의 사도적 기원을 부정한다. 그래서 교회는 두 사람을 면직했다. 그러나 의심은 교회에 남아 있다가, 16세기 Erasmus와 Calvin이 사도적 기원을 조심스레 모른다고 말했다(기강 16.17). 1642년 G. T. Voss와 1647년 J. Ossher도 부정했다.
이 이유를 필립 샤프는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12명이 함께 한 신조를 만든다는 것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이다. 사실 위원회가 신앙고백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지금도 더 좋은 신앙고백을 만들 가능성은 있다.
둘째, 성경은 그것에 관해서 침묵한다.
셋째, 니케아 회의에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사도신경이 있었다면(사도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다면), 니케아 신조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신경들 사이의 변화(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섯째, 사도신경은 동방교회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교회 역사는 헬라(동방)에서 로마(서방)로 발전해기 때문이다. 동방교회가 사도신경을 알지 못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서방교회가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이란 사도가 만든 것은 아니고, 사도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권위는 사도의 가르침을 반영하기에 사도적 권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원래의 사도신경과 우리가 사용하는 신경은 같은 것이 아니다. 원형은 AD 2세기에 찾을 수 있고, AD 5세기 Rufinus의 것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사도신경은 어떻게 생겼을까?
첫째, 전통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도신경은 진술적 고백이다. 세례를 받을 자가 교리를 받고 마지막 때에 이 신경을 배웠다. 전달받은 자(Traditio Symboli)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당시 주교는 한 문장씩 가르쳐 주었으며 세례를 받을 자는 신경을 외워야 했고 예배에서 공적으로 신경을 암송해야 했다(Redditio Symboli).
교회가 교인에게 => Traditio symboli//Redditio symboli <= 교인이 교회에
둘째, 켈리의 견해인데 ‘Interrogative form’이라고 믿는 것이다. 4세기에 두 가지 형식(진술적 형태와 질문적 형태)이 동시에 있었다고 한다. 세례 받을 자는 공적으로 고백했고 질문으로도 했다. 질문형식이 고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기만 했다. 이것이 고대 로마 고백이라고 믿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Turtullian, Cyprian, Justin등이다.
셋째, 결론은 위의 두 가지가 항상 같이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고백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과 같이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야 했다(삼위일체 하나님). 또한 세례 전에 질문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사도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것이다. 사도신경의 원형은 라틴어이고 2세기의 것으로 보인다.
The Latin text of Tyrannius Rufinus: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et in Christum Ies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natus est de Spiritu sancto ex Maria virgine,
qui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est et sepultu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in caelos,
sedet ad dexteram patris, u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et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and in Christ Jesus His only Son, our Lord,Who was born from the Holy Spirit and the Virgin Mary,Who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and buried,on the third day rose again from the dead,ascended into heaven,sits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whenc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and in the Holy Spirit,the holy Church,the remission of sins,and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헬라어 사도신경
Πιστεύω εις Θεον Πατερα, παντοκράτορα, ποιητην ουρανου και γης.
Και (εις) `Ιησουν Χριστον, υί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τον κύριον ήμων, τον συλληφθέντα εκ πνεύματοσ άγίου, γεννηθέντα εκ Μαρίασ της παρθένου, παθόντα επι Ποντίου Πιλάτου, σταυρωθέντα, θανόντα, και ταφέντα, κατελθόντα εις τα κατώτατα, τη τρίτη `ημέρα `αναστάντα `απο των νεκρων, `ανελθόντα εις τοθσ ουρανούσ, καθεζόμενον εν δεξια θεου πατροσ παντο δυνάμου, εκειθεν ερχόμενον κρϊναι ζωντας και νεκρούς.
Πιστεύω εις το Πνυμα το `Αγιον, αγίαν καθολικην εκκλησίαν, αγίων κοινωνίαν, άφεσιν αμαρτιων, σαρκος ανάστασιν, ξωήν αιώνιον. Αμήν.
로마 교회는 처음에 공인본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800년 샤를르마뉴가 많은 개혁을 했는데 공인본문을 가르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몇 세기 동안 로마는 정치적으로 약화되었다. 1013년에 로마교회는 자기의 원형대신에 공인본문을 드디어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현재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은 공인본문이다.
루터교회는 “우리는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라는 말을 첨가해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도 세계의 각 교회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의 차이는 남아 있다. 사도신경의 모형은 40-50개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도신경은 “지옥에 내려 가사”가 빠져 있다.
(1) “to believe in”에서 “in”의 인격적인 의미가 한글에서는 강조되지 않는다. 한글에서는 “다시 사는 것”에서 그 부활의 사실을 믿는다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비해 원문은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인격적인 것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2) “천지를 만드신”은 본래 원문 “Creator”(창조자)로 표현하는데 단순히 ‘만든 자’ 정도로만 표현하고 있다. ‘창조하다’와 ‘만들다’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만드는 것은 있는 재료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창조는 없는 것에서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3) “그 외아들”(His only Son)에서 그는 정관사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원문은 소유격이다.
(4) “잉태하사”라는 단어는 능동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원문은 분명히 수동태이다. “Who was conceived” 예수가 잉태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기에 한글은 마리아가 잉태한다는 의미이기에 잘못하면 이 부분이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에 대한 고백인 것처럼 느껴진다.
(5) “지옥에 내려가사”(Descended to hell)이 번역에서 삭제되었다.
(6) “장사한 지”(Buried)는 “묻힌 지”로 수동으로 해석되어야 할 부분이다.
(7)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God the Father Almighty)에서 본문에 있는 “아버지”가 빠져 있다. 본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이다.
(8)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는 “보편 교회”로 번역해야 옳다.
(9)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는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은 모두 분사가 아니라, 모두 명사이다.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