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앙고백은 “벨기에 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현재의 벨기에라고 알려진 남부 네덜란드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고백의 주 작성자는 ‘귀도 드 브레’ Guido de Brès 라는 사람으로 네덜란드의 개혁교회의 설교자였고 1567년에 순교자로 그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교회들은 16세기를 지나는 동안 로마 가톨릭의 통치에 의하여 아주 극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 가운데 로마 가톨릭의 잔인한 압제에 저항하며, 박해자들이 그 책임을 전가시키는 바와 같이 개혁신앙의 고수자들이 반역자가 아니라 오히려 성경에 근거한 참된 기독교 교리를 고백하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드 브레가 1561년에 이 고백을 준비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이 고백서의 사본이 왕 펠리페 2세에게 보내지는데, 이 사본에는 합법적인 모든 일에는 정부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등에 채찍을 맞고, 칼에 혀가 잘리며,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온 몸이 불에 타는 것이 이 신앙고백에 나타난 진리를 부인하고 죽는 것보다 낫다”라고 기록한 청원자들의 선언이 함께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박해로부터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목적이 즉시 성취되지 못했으며, 드 브레 역시 자신의 생명으로 그 믿음을 지켰던 수 천 명의 사람들 중에 한 명처럼 실패했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이 신앙고백서의 구조는 작성자에게도 어느 정도 유익이 되었던 프랑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는 주로 장 칼뱅에 의해 작성되었고 2년 전에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드 브레의 작품은 단순히 칼뱅의 것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에서 교회들에 의해 즉시 기꺼이 받아들여졌고, 총회에 의해 채택되었으며, 16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도 그대로 고수되었습니다. 1618-19년에 개최된 도르트 회의에서도 이 고백서를 개혁교회의 교리적 표준 가운데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하면서, 각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이 서명하도록 요구되었습니다. 이 고백서의 탁월성은 개혁주의 교리의 최상의 상징적인 문서들 중 하나로서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제1조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다
우리 모두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다는 것을1)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합니다.2) 그분은 단순하시고 영적인 존재입니다.3) 그분은 영원하시며,4) 완전히 이해될 수 없으시고,5) 보이지 않으시며,6) 변하지 않으시고,7) 제한이 없으시고,8) 전능하시고,9) 완전히 지혜로우시며,10) 공의로우시고,11)선하시고,12) 모든 선이 흘러나오는 근원이십니다.13)
제2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법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압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에 의한 것으로, 이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서 1)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은 아주 많은 글자들처럼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20절에서) 말한 바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 죄를 인정하게하기에 충분하여, 사람이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분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을 통한 것으로,2)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그분의 영광과 구원에 대하여 보다 더 분명하고도 충분하게 자기 자신을 알리십니다.
제3조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서) 말한 바대로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특별한 돌보심 안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셔서 당신의 계시된 말씀을 기록하도록 맡기셨으며,1) 그분은 친히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기록하셨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록들을 거룩하고 신성한 성경이라고 부릅니다.3)
제4조 정경
우리는 성경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곧 구약과 신약으로, 이 책들은 정경이며,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제5조 성경의 권위
우리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 기초하고 확증하는 거룩한 정경으로1) 받아들입니다.2) 우리는 이 책들에 포함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떠한 의심 없이 믿습니다.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특별히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며,3)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4)
제6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우리는 외경들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제7조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심지어 사도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불법입니다.2)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 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 12:32),3)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4) 우리는 제 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이나, 위대한 다수의 견해나, 고대의 유풍, 시대와 사람의 계승, 공의회나, 법령 혹은 규칙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5)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 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해야 합니다.6)
제8조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별되신다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니,1) 그분은 본질상 한 분이시며, 세 위격이시고, 그분의 비공유적 속성에 의해 실제로, 참으로, 영원히 구별되는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2) 성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며, 기원이시며, 시작이십니다.3) 성자는 말씀이시고, 지혜이시며, 성부의 형상이십니다.4)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능력과 권능이십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하여 셋으로 나누이지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그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각자의 구별된 특성으로 구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가 아니고 성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세 위격들은 나누이지 않고, 섞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나, 오직 성자만이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그의 아들 없이,6) 또는 그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본질상 동일한 한 분이시며 영원히 동등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 위격들은 모두 진리와 능력과 선함과 긍휼에 있어서 처음도 아니요 나중도 아니며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9조 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증거로부터,1) 그리고 삼위 각각의 사역으로부터,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깨닫게 되는 삼위의 사역으로부터 압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도록 인도해 주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구절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고, 몇몇 구절들만 신중하게 선택하여 언급하면 충분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창 3: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부분은 하나보다는 더 많은 신적 위격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위격을 가지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구약에서는 다소 분명치 않던 것이 신약에 와서는 매우 명백해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 3:17) 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고, 성자께서는 물 가운데 계셨으며, 성령님께서는 비둘기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성자 위에 내려오셨습니다.2)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세례의식에 대해서도 이 형태로 제정하셨는데,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 세 개의 위격을 가지신 것을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를 한참 뛰어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교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장차 하늘에서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이 삼위의 독특한 직분과 사역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부는 그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성자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와 구속주로, 성령께서는 그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주로 불리십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주의, 이슬람,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단들 즉, 마르키온, 마니,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이 정통 교부들에 의해 정식으로 정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교회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에 관한 세 신경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교부들이 동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입니다.
제10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요,1) 영원부터 나셨으며, 만들어지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으셨고(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는 피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시고, 그 본성의 참된 속성을 나타내시며(히 1:3), 모든 것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2)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우리의 본성(즉 인성)을 취하실 때부터가 아니라 영원부터3) 그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음 각 성경의 증거들을 비교해볼 때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으로,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4) 사도 요한이 말하기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말씀에 의해서 만물이 만들어졌으며,5) 히브리서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지으셨으며,6)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7)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시는 그분은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을 그때에 계셨다는 사실이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따라서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하셨고, 그가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이시고, 우리가 간구하고예배하고 섬길 분이십니다.
제11조 성령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태어나신 것도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1) 성령님께서는 순서에 있어서 삼위일체 가운데 제3위이시고, 본질과 위엄과 영광에 있어서 성부, 성자와 동일하시고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령님께서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2)
제12조 모든 것, 특히 천사의 창조
우리는 성부께서 말씀, 곧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무(無)로부터 창조하셨고, 그것들이 보시기에 좋았으며,1) 그분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그 존재와 모양, 형태를 주셨으며, 각각의 사역과 기능을 부여하심으로 그 창조자를 섬기도록 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부께서 또한 자신의 영원한 섭리와 무한한 능력에 따라 모든 천지만물을 계속해서 유지하시고 통치하심으로 인간을 섬기도록 하셨으며, 마침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천사들을 선하게 창조하셔서 자신의 사자(使者)로 삼으시고, 당신의 택함 받은 백성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2) 그 천사들 중 일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높은 지위에서 타락하여 영원한 파멸로 떨어졌으나,3) 나머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원래 가졌던 처음 지위를 계속해서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은 이렇게 타락하여하나님과 선한 모든 것들의 원수가 되었습니다.4) 그들은 온갖 힘을 다하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황폐화시키고, 그들의 악한 궤계로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위해서 마치 살인자처럼 잠복하여 기다립니다.5)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 때문에 영원한 저주를 선고받아 날마다 무서운 고통을 기다리며 지냅니다.6)그러므로 우리는 영들이나 천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의 오류나,7) 마귀는 피조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기원이 있으며, 부패함없이 그 본성 상 악하다고 말하는 마니교의 오류를 혐오하며 배격합니다.
제13조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이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에 만물을 유기하시거나 운명 혹은 우연에 맡기지 않으시고,1) 당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다스리시고 통치하심으로 이 세상에는 그분의 지시없이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음을 믿습니다.2) 그러나 하나님은 저질러지는 죄의 조성자도 아니시고, 그 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3) 왜냐하면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은 너무나 크고 헤아릴 수 없어서 심지어 마귀나 악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뛰어나고 공정한 방식으로 당신의 사역을 정하시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4) 그리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그분의 일하심에 대해서는 우리의 능력에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호기심으로 질문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최대의 겸손과 경외심으로 우리에게 감춰진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찬양하고,5)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학생임에 만족하여, 이러한 한계를 넘지 않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6)이 교리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는데, 그 이유는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오직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돌보심으로 우리를 감찰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그 능력 아래 붙드셔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그가 다 세신 바 되었기 때문에), 참새 한 마리라도 우리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땅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마 10:29-30). 우리가 이것을 신뢰하는 것은 그분께서 마귀와 모든 원수들을 제압하심으로 하나님의 허락과 뜻 없이는 그것들이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7)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에 아무 상관하지 않으시며 다만 우연에 맡겨두셨다고 말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가증스런 오류를 배격합니다.
제14조 사람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사람이 참으로 선한 일을 행할 수 없음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1) 당신의 형상과 모양, 선과 의와 거룩에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조성하셨음을 믿습니다.
2) 사람의 뜻은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 그런 지위를 바르게 인식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탁월함을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고 결과적으로 사망과 저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받은 생명의 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졌으며, 전체 본성이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사람은 육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대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4)또 사람은 모든 면에 있어서 악하고 완악하고 부패해져서,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탁월한 은사들을 상실하고,
5) 다만 몇 가지 작은 흔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그 흔적들은 사람이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6)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는 말씀으로 사도 요한이 인간을 어두움이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빛은 변하여 어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7)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자유의지와 관련하여 이 가르침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의 노예일 뿐이며(요 8:34), 하늘에서 주신 바가 아니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 3:2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고 하셨는데, 누가 자기 스스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하겠습니까?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 8:7)라는 사실을 아는데, 누가 감히 자기 자신의 뜻을 찬양하겠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고전 2:14)라는 말씀이 있는데 누가 자기의 지식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컨대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는 말씀을 알고서야 누가 감히 무엇인가를 주장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가 말한 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는 것은 당연히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주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의지나 이해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15조 원죄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원죄가 인류 전체에 퍼져 있음을 믿습니다.1) 원죄는 인간 본성 전체의 부패이며2) 심지어 모태에 있는 유아들에게까지도 미치는 유전적인 악입니다.3) 근원으로서의 원죄는 인간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죄를 생산합니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악하며 혐오스러워서 인류를 정죄하기에 충분합니다.4) 원죄는 없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세례로도 근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마치 물이 샘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처럼 이 무서운 근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5)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원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전가되어 정죄에 이르도록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용서함을 받습니다.6) 이 사실은 신자들이 죄 가운데서 평온하게 지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부패에 대한 인식이 신자들로 하여금 이 죽을 몸에서부터 구원받기를 탄식하면서 간절히 기다리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죄가 다만 모방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는 펠라기우스파의 오류를 배격합니다.
제16조 하나님의 선택
우리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첫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파멸에 빠졌을 때,1)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자신을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나타내셨음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경륜 가운데2) 당신의 순수한 선하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3) 선택하신4) 자들을, 그들의 행위를 고려하지 않으시고5)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시고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공의로우심이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그 스스로 빠져든 타락과 멸망에 버려두심에 있습니다.6)
제17조 타락한 사람의 회복
우리는 사람이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 완전히 비참하게 되었을 때,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 앞에서 두려워 떨며 도망칠 때에 그를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주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창 3:15)에 대한 약속으로 사람을 위로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2)
제18조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1)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2) 당신의 독생하시고 영원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그 아들은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태어나셨음을 고백합니다(빌 2:7). 그분은 진실로 모든 연약함을 가진 참된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으되,3) 죄는 없으십니다.4)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모태에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5) 그분은 인성을 입으심에 있어서 육체에 대해서만 아니라 참된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도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참된 사람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육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영혼도 잃었기 때문에 둘 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둘 다를 취하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어머니로부터 사람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재세례파 이단에 반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녀들의 혈육에 함께 속하셨음을 고백합니다(히 2:14).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신 자요(행 2:30),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자며(롬 1:3), 동정녀 마리아의 태의 열매요(눅 1:42), 여인에게서 나셨고(갈 4:4), 다윗의 가지시며(렘 33:15),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싹이시요(사 11:1), 유다로 좇아 나셨고(히 7:14), 육신으로는 유대인의 자손이시며(롬 9:5), 성자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과 연관되시므로 아브라함의 씨입니다.6)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면에 있어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히 2:16-17; 4:15). 이와 같이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십니다(마 1:23).
제19조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우리는 이 잉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이 인성과 분리되지 않고 연합되어 있으며 연결되어서,1) 하나님의 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위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 안에 연합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각각의 본성은 그 자체의 구별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신성은 항상 창조되지 아니하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히 7:3), 하늘과 땅에 충만하십니다.2) 그분의 인성은 그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시는데, 시작된 날이 있고 창조되었으며 유한하시고 참된 육체의 모든 속성들을 다 갖고 계십니다.3) 비록 그분의 부활로 인하여 당신의 인성에 불멸성을 부여 받으셨을지라도, 그분은 인성의 실체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4)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또한 그분의 몸의 실체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5)그러나 이 두 본성은 하나의 위격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두 본성은 그분의 죽음에 의해서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으실 때 당신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신 것은 그분의 육체로부터 떠난 참된 사람의 영이었습니다.6) 한편 그분의 신성은 항상 그분의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은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습니다.7) 그리고 비록 신성 그 자체가 잠시 동안 드러나지않았을 뿐, 그분이 어린 아이일 때에도 그분 안에 신성이 있었던 것처럼 신성은 그분 안에 언제나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그분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사람이심을 고백합니다. 곧 참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사망을 정복하셨으며, 참된 사람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제20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우리는 완전히 자비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셔서, 불순종을 범한 본성을 취하게 하시고1) 그 본성을 만족케 하시어, 그의 가장 지독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케 하셨음을 믿습니다.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에게 우리의 허물을 담당케 하심으로서 그분의 공의를 나타내셨으며,3) 죄를 범하여 멸망 받은 우리에게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도록 내어주셨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기위하여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4)
제21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리라고 맹세로 확정 받으셨음을 믿습니다.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위치에서 당신 자신을 당신의 아버지 앞에 내어주시고, 당신의 완전한 속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시고,2) 십자가의 나무 위에서 당신 자신을 드리셨고,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3) 이는 선지자들이 예언한바와 같습니다.4)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흠 없이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 그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았도다.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5,7,12).”6) 그리고 비록 본디오 빌라도가 처음에는 그분을 무죄하다고 선언했을지라도,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범죄자로 정죄 받으셨습니다.7) 그분은 취하지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시 69:4). 그분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죽으셨습니다(벧전 3:18).8) 그분은 몸과 영혼이 고난 당하셨고,9)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느끼셔야 했고, 그분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었습니다(눅 22:44). 마지막으로, 그분은 외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견디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전 2:2)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빌 3:8). 우리는 그분의 상함으로 위로를 발견하고, 신자를 언제나 완전케 하는 단번에 드려진 이 한 번의 속죄 제사(히 10:14) 외에 하나님과 화해할 다른 방편을 찾거나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10)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천사가 그분을 “예수”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마 1:21).11)
제22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1)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않는 것입니다.2)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반드시 따라와야 하기 때문입니다.3)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느니라(롬 3:28)고 분명하게 말합니다.4)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5)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사용된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공로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이고,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혜택들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이 혜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면해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제23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우리 죄의 용서에 있고, 다윗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도 그 죄의 용서에 있음을 믿습니다.1) 다윗과 바울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선포합니다(롬 4:6; 시 32:1). 사도는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합니다(롬 3:24).2)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확고한 근거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고,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어떤 것 혹은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4)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만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5)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것이 됩니다.6)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확신을 주며, 우리의 양심을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게하기에 충분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워 떨면서 숨으려 했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 자신을 덮으려 했던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게 합니다.7) 정말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피조물들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진저! 우리는 소멸될 것입니다.8)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윗과 함께 “오 여호와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시 143:2).
제24조 우리의 성화와 선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1) 사람 안에 생기는 이 참된 믿음이 그 사람을 중생하게 하여 새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믿습니다.2) 이 참된 믿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며 죄의 노예 됨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3) 그러므로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무관심하게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4) 오히려 의롭게 하는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5) 다만 자기 사랑이나 정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떤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작용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헛된 믿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성경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행위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도록 사람을 권유하는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뿌리로부터 나온 이 행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행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거룩하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우리의 칭의에 이바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우리가 어떤 선도 행하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의롭게 되기 때문입니다.6) 그렇지 않으면 나무 그 자체가 선하지 않고서 그 나무의 열매가 선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그 행위들이 선한 것일 수 없습니다.7)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지만, 공로로 삼기 위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공로로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빚지고 있다기보다 차라리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습니다.8)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 2:13). 다음과 같이 기록된 말씀에 유의합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행을 보상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9)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물들을 주시는 것은 당신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을 행할지라도, 우리는 그 선행에 우리의 구원의 근거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로 더럽혀지지 않고 마땅히 형벌을 받지 않는 단 하나의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10) 설령 우리가 한 가지 선행을 보여줄 수 있다하더라도, 한 가지 죄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그 선행을 거절하시기에 충분합니다.11) 따라서 우리가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항상 의심에 가득차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가련한 양심은 끊임없이 괴로워할 것입니다.12)
제25조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
우리는 율법의 의식들과 상징들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끝났고, 그 모든 그림자들이 성취되었으므로,1)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그 율법을 사용하는 것이 폐지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의 진리와 본질은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2)동시에 우리는 복음의 교리로 우리를 견고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에 따라 모든 영예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율법과 선지자로부터 취해진 증거들을 여전히 사용합니다.3)
제26조 그리스도의 중보
우리는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1)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2)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셨으므로,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으로 나아가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3) 그런데 성부께서 당신 자신과 우리 사이에 세우신이 중보자께서는 당신의 위대하심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중보자를 찾을 수야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는 어떤 피조물도 없습니다.4)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셨을지라도, 자기를 비워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형체와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빌 2:6-7),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히 2:17).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중보자를 찾는다면,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당신의 원수였을 동안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분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롬 5:8,10) 만일 우리가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을 찾는다면,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계시고5)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 외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마 28:18) 또한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보다 누가 더 빨리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6)그러므로 성인들을 영예롭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불명예스럽게 하는 습관들을 소개하여 그들이 결코 행하지도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하는 것은 순전히 신뢰의 결핍입니다. 이와 반대로 성인들은 그들의 저서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직무에 따른 그런 영예를 끊임없이 거부했습니다.7)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가치함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의가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가치에 근거하여8) 우리의 기도를 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9)그러므로 선한 이유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이런 어리석은 두려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신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합니다(히 2:17-18). 또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더욱 더 격려하기위해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합니다(히 4:14-15).10) 동일한 서신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등을 말합니다(히 10:19,22). 또한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히 7:24-25).11)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우리가 왜 다른 대언자를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우리의 대언자로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한 분만 구하지 않고 다른 대언자 때문에 그분을 떠나거나 다른 대언자를 찾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주셨을 때, 그분께서 우리가 죄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데,12)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배운 바와 같습니다.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구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확신합니다(요 16:23).14)
제27조 보편적 기독교회
우리는 하나의보편적, 혹은 우주적인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1)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침을 받아,2)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3) 참된 기독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며 모임입니다.4)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 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없이는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5)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는 아주 미미하게 보이고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6)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격노에 대항하여 하나님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7) 그래서, 아합의 폭정 동안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8)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걸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9) 그러면서도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10)
제28조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1)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2)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3) 자신의 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숙여야 하며4)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5)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6)이것이 좀 더 효과적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분리하여7)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은8) 모든 신자의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9)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제29조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분파들이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하고도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함을 믿습니다.1) 여기에서 우리는 선한 자들과 섞여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2) 참 교회의 몸과 교제는 자칭 교회라 부르는 모든 분파들로부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다음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순수한 복음 설교를 선포합니다.3) 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4) 참 교회는 죄를 교정하고 징벌하는 교회의 권징을 실행합니다.5) 간단히 말해서, 참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며6) 거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하며7)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생각합니다.8) 이러한 표지로서 참 교회는 분명하게 알려지기에, 그 누구도 이 교회로부터 분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9) 죄를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며,10)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참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11) 자신들의 육체와 그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12) 비록 그들에게 큰 연약함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전 생애동안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연약함에 대항하여 싸웁니다.13)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습니다.14)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 자체와 교회의 규례들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합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멍에에 자신을 복종시키려 하지 않습니다.15)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대로 성례를 시행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그 성례들에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거짓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합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과 거짓 교회의 죄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꾸짖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16)이 두 교회들은 쉽게 알 수 있어서 서로 구별됩니다.
제30조 교회의 정치
우리는 이 참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가르치신 영적 질서에 따라 다스려져야 함을 믿습니다.1) 참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사역자 혹은 목사들이 있어야 합니다.2) 또한 목사들과 함께 교회의 회의를 구성할3) 장로들과4) 집사들도5)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참 신앙을 다음과 같이 보존합니다. 즉 이들은 참된 교리가 전파되는지를 살피고, 악한 자들을 영적인 방식으로 권징하고 억제하며, 가난한 자와 고통 받는 모든 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고 위로를 얻도록 살핍니다.6)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규칙에 따라7) 신실한 자들을 선출하여8)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제31조 교회의 직분자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1) 기도와 선한 질서를 따라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부적절한 방법이 개입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각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또한 그 부르심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2) 말씀의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든지 간에 동등한 권세와 권위를 가지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교회의 유일한 우주적 감독자요 유일한 머리이신3)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4) 하나님의 이 거룩한 규례가 위배되거나 거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말씀 사역자들과 교회의 장로들을 그들의 사역으로 인하여 특별히 존경해야 하며,5) 가능한 한 불평이나 다툼이 없이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제32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몸 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강요하는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이나 규범들을 배격합니다.2) 우리는 조화와 일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적법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3)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과 출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4)
제33조 성례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함과 연약함을 잊지 않으시어성례를 제정하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약속을 우리에게 인치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유지해 주십니다.1)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2)에 이것을 더하셔서 당신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과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것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더욱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십니다. 성례들은 내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3) 그러므로 표는 헛되거나 무의미하여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성례들의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 성례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례의 수를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해 주신 두 가지, 즉 세례와4) 예수 그리스도의 만찬의 성례로5) 만족합니다.
제34조 세례의 성례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신(롬 10:4)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를 보상하거나 만족케하기 위하여 드리고 드려왔었던 다른 모든 피 흘림을 끝나게 하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피로써 행하던 할례를 폐하시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1)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거짓 종교들로부터 구별되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어그분의 표지와 표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2)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과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일반 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19). 이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질 때우리 몸에서 더러운 것이 씻기어지는 것처럼, 또 물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뿌려질 때그 사람의 몸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서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십니다.3)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씻어 주고 정결하게 해 주며4)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5) 이런 일은 그런 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6)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뿌림으로 되는 것이고,7) 그것은 우리의 홍해이고8) 우리가 바로의 압제 곧 마귀를 피하여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하는 홍해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편에서 보면 목사들이 우리에게 성례 즉 보이는 것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성례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선물들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모든 부정(不淨)과 불의를 씻으시고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9)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모든 위로로 가득하게 하시고, 당신의 아버지 같은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새로운 본성으로 우리를 옷 입히시고, 이 모든 일로 옛 본성을 벗어버리게 하십니다.10)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직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함을 믿습니다.11) 세례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례는 물이 우리 위에 주어지고 우리가 그 물을 받을 때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직 한번 받는 단번의 세례로 만족하지 않으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비난하는 재세례파의 잘못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약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서 유아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언약의 표로 인 쳐져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12) 정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리신 것만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피 흘리셨습니다.13) 그러므로 주님께서 율법에서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어린 양을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대한 표와 성례를 받아야만 합니다.14)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입니다. 세례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할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습니다(골 2:11).
제35조 주의 만찬의 성례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시키시고 당신의 가족 곧 당신의 교회로 받아들이신 자들을 육성(育成)하시고 양육(養育)하시기 위해서 주의 만찬의 성례를1) 제정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적 생명을 가집니다.2) 하나는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첫 번째 탄생으로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두 번째 탄생에서 주어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에서 복음의 말씀3)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빵을 정하셨습니다. 이 빵은 생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입니다. 신자들이 가지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산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4) 그들에게 보내 주셨는데(요 6:51), 그분께서는 신자들이 당신을 먹을 때 즉 믿음에 의해서 영적으로 취하여 받을 때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5) 육성하고 양육하십니다.6)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빵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빵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 하십니다.8)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헛되이 당신의 성례를 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표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감추어진 활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9)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진짜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방식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당신의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든 혜택들과 함께 당신 자신을 받은 참여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즐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영적 식탁입니다.1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육체을 먹게 하심으로 우리의 가난하고 고독한 영혼을 육성하시고 강화시키시고 당신의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비록 성례가 표하는 바와 함께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 표하는 바가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12) 악한 자들은 분명히 성례를 받음으로 정죄에 이를 뿐이고, 성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둘 다 성례를 받았지만 성례가 표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13)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신자들과만 교제하십니다.14)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사함으로 기념하고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을 고백할 때15) 겸손과 경외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16) 그러므로 누구든지 조심스럽게 자기를 살피지 않고는 이 식탁에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신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 11:28-29).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자극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가증한 고안물을 성례의 모독으로서 배격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신 규례로 만족해야 하고 그들이 말한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제36조 시민 정부
우리는 인류의 부패 때문에 우리의 은혜로우신하나님께서 왕과 군주와 공직자들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1)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방탕함이 억제되고, 모든 것이 선한 질서대로 그들 가운데서 행해지게 하기 위해,2) 세상이 법률과 정책에 따라 다스려지기를 원하십니다.3)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해서 정부의 손에 칼(무력)을 두셔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보호하십니다(롬 13:4). 이것을 억제하고 보호하는 그들의 임무는 공공질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고, 복음의 말씀이 모든 곳에서 설교되게 하여4)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요구하신 대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시도록 하기 위한 교회와 교회의 사역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더욱이 신분이나 조건,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공직자들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세금을 내야하며, 그들을 경의와 존경으로 대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5)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6)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길을 지도하셔서 우리가 모든 면에 있어서 경건하고 정직하여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딤전 2:1-2).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재세례파와 다른 반역하는 사람들과 일반적으로 권세들과 공직자들을 배격하고 공의를 무너뜨리며7) 이익 공동체를 도입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세우신 질서를 혼란하게하는 모든 자들을 정죄합니다.
※ 표시된 부분에는 “모든 우상숭배와 거짓 예배는 제거되어야 하고 금지되어야 하며, 모든 적그리스도의 왕국은 파괴되어야 하며”라는 말이 있었으나, 1905년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일반 총회에 의해서 삭제되었습니다.
제37조 최후 심판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께서 정하셨지만 모든 피조물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때가 이르고1) 선택받은 자들의 수가 찰 때,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영광과 위엄으로3) 승천하신 것처럼(행 1:11) 육신으로 그리고 눈에 보이게4)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주로 선언하시고5) 옛 세상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이 옛 세상을 불태우실 것입니다.6) 그 때에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살았던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곧 모든 산 사람들이 이 위대하신 심판주 앞에 자기 스스로 서게 될 것입니다.7) 그들은 천사장의 부름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소집될 것입니다(살전 6:16).
그 때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땅으로부터 일어나서8) 그들의 영혼이 다시 한 번 그들이 살았던 바로 그 몸과 연합할 것입니다. 그 때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자들은 썩어질 것이 썩지 않게 순식간에 변화될 것입니다.9) 그 때 책들이 펴지고 죽은 사람들이 선악 간에(고후 5:10) 이 세상에서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계 20:12).10) 정말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언급한 모든 무익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마 12:36), 이것은 세상이 단지 농담과 재미로 여긴 것들입니다. 사람들의 비밀과 외식이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한 이유로 사악한 악인들에게는 이 심판에 대한 생각이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11) 그러나 의로운 택자들에게는 이 심판에 대한 생각이 큰 기쁨과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택자들의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겪은 수고와 고통의 열매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2) 그들의 무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핍박하고 압제하고 괴롭히던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서운 보복을 하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13)악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양심의 증거에 의해서 유죄가 입증되어 죽지도 않고 오직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 속에서(마 25:41)14)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15)한편 신실하고 택함 받은 자들은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택한 천사들 앞에서(마 10:32) 그들의 이름을 인정하실것입니다.16)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실 것이고(계 21:4),17) 그들이 현재 많은 재판관들과 시민 정부의 권세자들에 의해서 이단자와 악인으로 정죄 받은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한 것임이 인정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로운 보상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영광을 소유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1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약속을 즐길 것을 간절히 열망하면서 이 위대한 날을 고대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