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장 대적의 멸망과 유다인의 부림절
에 9:17
마침내 12월 13일이 되었습니다(3:13). 유다인과 그 대적의 한 판 싸움이 일어날 기세지만 승패는 결정이 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드개가 총리로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은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죽입니다. 수산 성에서만 13일 날 500명, 14일에 또 (1____) 명을 죽입니다(15절). 다른 도시에서 죽인 자를 합치면 모두 75,000명입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다인을 혐오하고 살해하려 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다인은 정당방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을 죽이려는 원수의 공격을 방어한 것입니다. 더구나 유다인은 돈 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받는 데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되 그들의 (2____)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10, 15, 16절).
다른 성에는 13일에 전쟁을, 14일에는 잔치를 하지만, 수산 성에는 12월 13-14일에 전쟁을 치르고 15일에 잔치를 베풉니다. 모드르개는 전국에 공문을 내려 14-15일을 부림절(節)로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본래 ‘제비’는 ‘부르’(Pur)인데 이틀 동안 지키기에 복수형 ‘부림’(Purim)이 된 것입니다. 이 후 유다인은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3____)을 주며 가난한 자를 (4____)합니다(22절).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5____)에게서 벗어나서 (6____)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7___)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22절)
당시 유다인은 포로생활을 하면서 ‘고립성’과 ‘독특성’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페르시아인은 유다인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다인을 고발할 때 사용한 논리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3:8) 또 에스라 4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의 고소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스 4:12-16)
답: 1. 삼백, 2. 재산, 3. 예물, 4. 구제, 5. 대적, 6. 평안, 7.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