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5장 요시야의 유월절
대하 35:18 (왕하 23:21-23, 28-30)
요시야의 종교개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왕들도 요시야가 (1_____)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2____)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주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18절) 히스기야 왕이 이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키긴 했지만(대하 30장), 요시야의 유월절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 때는 2월 14일에 치렀고 백성이 청결케 되는 것과 온 백성이 함께하지는 않았습니다. 요시야 왕과 장관(방백)들과 레위 지도자들은 자원해서 백성을 위해 유월절을 위한 제물로 어린 양과 어린 (3____)와 수소를 많이 제공합니다(7절). 본래 유월절 제사에는 양과 염소(출 12:5)와 소(신 16:2)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유월절은 요시야가 왕이 된지 18년 째 되던 해에 있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된지 31년이 될 때 국제정세는 아주 복잡합니다. 주전 612년에 이미 아시리아는 멸망하고 신흥국 바빌론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북쪽지역 큰 제국이 무너져 불안정한 때 강력한 남쪽 제국인 이집트의 바라오 느고가 대군을 이끌고 유브라데 강가의 (4______)를 공격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습니다(20절). 이때가 주전 609년경 입니다. 요시야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5____)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6____)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22절) 하나님은 불신자를 통해서도 말씀합니다. 요시야는 친(親) 바빌론 정책을 펼쳐 이집트 군대를 므깃도에서 저지하려다 오히려 자신이 죽고 말았습니다.
요시야의 통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당시 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 (7______)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8____)”를 지었는데 그것이 후대까지 전해집니다(25절). 이 애가는 ‘예레미야 애가’와는 다른 것입니다.
답: 1. 제사장, 2. 유대, 3. 염소, 4. 갈그미스, 5. 변장, 6. 느고, 7. 예레미야, 8. 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