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야고보서(Jacob+書)는 야고보가 어떤 개인이나 특정한 교회가 아니라, 일반 성도와 보편 교회가 읽을 수 있도록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일반(공동)서신(a catholic or general Epistle)이라 불립니다. ‘일반서신’이라는 말은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주후 265-340)가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ㆍ이ㆍ삼서, 유다서를 그렇게 부른데서 유래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1절)가 누구일까요?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머리에 떠 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두 명이나 됩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마 4:21)가 있지만 일찍 죽었습니다(행 12:2, 주후 44년 경). 그리고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마 10:2-3, 혹은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 눅 6:16, 행 1:13). 하지만, 그를 야고보서의 저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마 13:55, 동시에 유다서의 저자인 예수님의 동생 형제 유다, 유 1:1)가 있습니다. 이 형제 야고보는 처음 예수님을 의심했지만(요 7:5), 나중에는 믿었고(고전 15:7), 후에 예루살렘 공의회의 지도자(행 15장)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회 역사와 대부분의 주석가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갈 1:19, 2:9; 행 21:18)를 저자로 봅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1절)입니다. 이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야고보서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믿음보다는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믿음을 강조했던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바울이 전한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가 상당히 자리를 잡았을 때 나타난 부작용을 교정하기 위해 행위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거절합니다. 바울이 칭의(稱義)의 ‘근거’를 보여준다면 야고보는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에 대해 말한다면, 야고보는 ‘의롭게 된 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릅니다. 바울 서신에는 ‘행위’가 ‘칭의’의 원인에서 제외되지만, 야고보서에는 ‘행위’가 ‘칭의’에서 나오는 결과로 인정을 받습니다.
내용
1장 1:1 인사말
1:2-18 시련과 시험
1:19-27 듣기와 행하기
2장 2:1-13 차별 금지
2:14-26 믿음과 행위
3장 3:1-12 혀 길들이기
3:13-18 두 종류의 지혜
4장 세속주의에 대한 경계
5장 5::1-6 부유한 압제자들에 대한 경고
5:7-20 여러 가지 권면들
야고보서 1장 문안과 말씀을 행하는 자
주요 구절: 약 1:22
야고보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1___)”(1절)이라고 자신을 지칭합니다. “종”은 ‘노예’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 ‘노예’(종)는 인류 역사에 있었던 착취의 상징으로서 노예제도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왕을 섬기는 종이니 천한 신분이 아니라, 존귀한 지위에 있는 자입니다. 종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항상 복종하고 그 어떤 시험과 시련에도 왕(주인)을 위하여 인내합니다. 혹시 지혜가 부족하면 왕(주인)에게 달라고 간구(5절)할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 속에 있는 기도는 늘 응답됩니다. 언약관계 밖에 있는 자는 기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약백성은 주인을 믿고 그분의 언약을 신뢰하고 행동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2____)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6절)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3절)을 수단적 측면을 강조하는 “믿음으로 구하고”(6절)라는 관점에서 말합니다. 야고보는 행위를 강조하고 믿음을 소홀이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도에게 시련은 마냥 슬퍼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극복할 대상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3____)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리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2-3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4절)는 말의 원 뜻은 ‘인내가 자기 임무를 완성하도록 내버려 두라’입니다. 곧 ‘끝까지 견디라’는 뜻입니다. 시험과 시련을 견디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시련”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시련에는 낮고 높고, 부와 가난의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부는 풀의 꽃과 같이 쉬 사라질 것입니다(9-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시험을 잘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4____)의 면류관”(12절)을 줄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험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5____)으로 우리를 낳으셨”(18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강하게 훈련시킵니다. 시험에서 넘어지는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시험 가운데 넘어지는 것은 순전히 “자기 욕심”(14절)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한즉 (6____)을 낳느니라.”(15절)
시험에 이기기 위해 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21절)는 것입니다. 실제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7___)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19-20절) 듣고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마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돌아서면 그 모습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23-24절). 말만 하고 행함이 없는 경건은 헛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8____)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27절)
생각하기 | |
신자가 시험 가운데 인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 |
해답 | |
답: 1. 종, 2. 의심, 3. 시험, 4. 생명, 5. 말씀, 6. 사망, 7. 성, 8. 환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