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말라기’(Malachi)라는 뜻은 ‘나의 사자(使者)’(my messenger), 곧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말라기는 바빌론에서 귀한 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에스라의 종교개혁이 있은 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재건된 유다는 여전히 페르시아의 한 변방 속국일 뿐입니다. 유다는 영적으로 깊은 낙담에 빠집니다. 예배는 형식만 남습니다. 영적 위기는 삶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언약백성은 오직 하늘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말라기에 무려 43.6%나 등장합니다. 어느 시대보다 불안한 시기에 오직 “만군”(萬軍)을 거느린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삶은 형편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은 다른 어떤 성경보다 더 노골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다를 넘어 이방백성을 향할 것입니다(1:11).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은 “그 이르는 날”(4:1) 혹은 “내가 정한 날”(4:3)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4:5)에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내용

1:1-5 서론

1:6-2:16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한 책망

2:17-4:6 여호와의 임재 선포

말라기 1장 하나님의 사랑 vs 이스라엘의 불성실

말 1:1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예언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다이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은 사라졌으니, 남은 유다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겐 메시아의 약속이 있지만, 아직도 바빌론의 속국으로 있습니다. 그 때 “내가 너희를 (1____)하였노라”(2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이 대답합니다. “주께서 (2_____) 우리를 (3____)하셨나이까?”(2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친절히 자기의 사랑을 변증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 (짝)사랑을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에서 찾습니다(2-5절). 바울도 로마서에서 무조건적 사랑의 증거로 그것을 인용했습니다(롬 9장). 하나님은 바빌론 포로에서도 살아남았던 불멸의 에서, 곧 에돔도 곧 멸망하게 될 것임을 천명합니다(이스라엘이 보기에는 아직도 건장해 보였기에).

 

6절부터는 제사장의 죄에 대해 지적합니다. 흠 없는 제물을 바치도록 가르치고 감독할 임무가 제사장에게 있지만, 그들은 주어진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 타협하며 흠이 있는 제물을 허락합니다. “너희가 (4_____) 떡을 나의 (5____)에 드리고도……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저는 것, (6____) 것을 드리는 것…..”(7-8절)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종이 주인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언약백성이 언약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제사 자체를 귀찮아하는 분위기입니다(13절).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7____)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린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10절) 하나님은 오히려 이방 민족 가운데 칭송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7___)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8____) 민족 중에서 내 (9____)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여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10____)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11절)

 

답: 1. 사랑, 2. 어떻게, 3. 사랑, 4. 더러운, 5. 제물, 6. 병든, 7. 기뻐, 8. 해, 8. 이방, 9. 이름, 10. 민족